상담심리학-행동치료의 기본가정
심리치료는 예술인가 과학인가? 심리치료는 삶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해 위에 펼쳐지는 오묘하고 깊이 있는 예술작업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에 대한 자연과학적 이해 위에서 진행되는 체계적이고 정밀한 과학적 작업이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견해에 따라 심리치료자의 이론적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
치료자가 당면한 기본 과제는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부적응 문제를 생성하고 지속시키는 심리적 요인과 과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치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다소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그의 인생과 정신세계 전체의 맥락 속에서 폭넓게 이해하고 개입하려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다소 설명 범위가 좁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이해하고 치료하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내담자의 과거 경험을 포함한 인생 전체뿐 아니라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고려하여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고자 하는 정신역동 치료자들이 전자의 입장, 심리치료가 실증적 연구결과에 근거한 과학적 토대 위에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행동치료자들이 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역동의 설명개념은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 아니라 치료과정도 비체계적이고 장기적이며 치료자의 주관성과 개성이 개입되는 예술적 요소를 지니게 되는 반면, 행동치료는 설명 범위가 좁더라도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를 객관적이고 명료한 개념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치료 과정도 치료 효과가 입증된 구체적 기법을 통해 체계적이고 치밀하게 진행되는 과학적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행동치료는 탁월한 창시자 1인의 경험과 사유에 근거하기보다 많은 연구자와 치료자의 노력에 의한 집단지성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행동치료의 기본 가정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학문적 성과에 근거해 심리학을 자연과학과 같이 엄밀한 과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므로 심리학은 정신분석 이론과 같이 개인 내부에 일어나는 모호한 현상에 대한 연구를 지양하고 객관적으로 관찰되고 측정할 수 있는 행동만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인간의 모든 행동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학습된 것이다. 이러한 행동주의 심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행동치료는 인간행동과 심리치료에 대한 몇 가지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개인의 특성은 관찰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분석되어 이해될 수 있다. 내담자의 부적응 문제도 관찰 가능한 문제행동의 집합체로 분석되어 이해될 수 있다.
둘째, 인간이 나타내는 대부분의 행동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다. 인간은 빈 서판과 같은 존재로 잠재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날 뿐 선천적으로 결정된 행동패턴은 거의 없다. 부적응적 문제행동 역시 잘못된 후천적 학습에 의해 습득된 것이다.
셋째, 행동치료의 주된 목표는 부적응적 문제행동을 제거하거나 긍정적인 행동을 학습함으로써 내담자의 적응을 돕는 것이다. 행동치료는 현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 행동치료자에 따르면, 내담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부적응으로 몰아가는 문제 행동을 제거하여 재발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동을 습득시켜 내담자의 적응을 개선할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치료라 할 수 있다. 즉, 무의식적인 역동의 분석과 통찰 없이도 내담자의 문제행동이 효과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심리치료는 과학적 원리와 방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심리적 치료는 치료자의 개인적 견해와 경험에 근거하기 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원리에 의해 내담자의 문제를 이해하고 실증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기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심리치료가 미신이나 신비주의적 시술과 구별되는 점은 과학적 원리와 방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